치카치카, 쉬~, 쉬~

동화 나라 2010/02/09 12:46
또 늦었네요.

명현이는 오늘도 텔레비전만 보고 있어요. 밥 차려 놓고 기다리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결국 팔을 걷어 부치셨어요. 밥 그릇에 조기 살을 발라 얹고, 숟가락 든 채 명현이를 따라 다니세요. 원더 팻이며, 뽀로로, 뿡뿡이와 따개비루 같은 친구들을 만나느라 명현이는 아침마다 밥에는 관심이 없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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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안 씹고 물고만 있으면, 입에 벌레 생긴다~!"
출근 준비로 바쁜 엄마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말해요. 듣는 둥 마는 둥, 명현이는 깡총깡총 뛰면서 노래만 불러요. "원더 팻, 원더 팻, 해냈다네.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했지. 우린 작고 힘도 없지만, 우리가 힘을 모으면 할 수 있어. 출동~, 원더 팻!" 이제, 아빠가 나설 차례예요.

"정명현~!"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네요. 아빠가 목소리를 높여요. "명현아~!" 그제야 명현이가 할머니가 내민 숟가락을 입으로 받네요. 아유, 곧 유치원 차가 올텐데. 밥을 반 그릇도 비우지 못했어요. 서둘러야 해요. 차를 놓치면 안되니까요. 아빠가 명현이 손을 잡고 욕실로 달려가요.

"자, 치카치카~!" 아빠가 치약을 묻힌 칫솔을 명현이에게 주셔요. 칫솔도, 치약도 핑크색이에요. 공주는 핑크색을 좋아하거든요. "윗니도 닦고, 아랫니도 잘 닦아야지~. 자, 뒷쪽도 잘 닦고~. 옳지, 잘한다." 명현이가 치카치카, 이를 닦아요. 치카치카 퐁퐁, 열심히 잘 닦아요.

이제, 입을 헹궈야죠? 아빠가 핑크색 컵에 물을 받아서 명현이에게 건네요. 컵을 받아든 명현이가 물을 한 모금 입에 넣고는 '오르르르르르루, 오르르르르루~" 하고 뱉어내요. "자, 한번 더~!" 아빠의 말에 다시 "오르르르르르루, 오르르르르르루~!" 하고는, 이번엔 입술을 오무려서 물을 뱉었어요. 입술 주변엔 온통 치약꽃이 허옇게 피어났어요. 명현이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어요. 뭔가 재밌는 게 생각났나봐요. 명현이 방긋 웃으며 이렇게 말해요.

"아빠, 아빠, 이거 봐, 이거 봐. 꼭 입이 쉬하는 거 같아. 치카치카 한 다음에, 입이 쉬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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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치카, 쉬~, 쉬~  (0) 201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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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오브 더 북

끌리는 책 2009/12/22 14:38
<피플 오브 더 북>
제럴딘 브룩스 지음, 이나경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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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래, ‘사건’이라 해야 옳다. 법으로 이슬람 사원의 첨탑 건설을 금하겠다는 발상도 그렇거니와, 그걸 투표를 통해 압도적으로 승인까지 해줬으니 더는 할 말도 없다. 돔형으로 짓는 이슬람 사원에 굳이 첨탑을 두는 것은, 이맘(성직자)이 그 첨탑에 올라 무슬림의 의무인 하루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독경)을 읊기 때문이다. ‘중립’의 가면을 걷어내고 마주하게 된 ‘야만’의 맨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피플 오브 더 북>을 떠올린다.

‘라 콘비벤시아.’ 공존의 시대, 약속의 땅이다.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유대인과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지금의 스페인 땅에서 평화롭게 이웃으로 살아갔다. 정치와 종교가 관용으로 어우러졌고, 사상과 문화가 예술로 꽃을 피웠다. 소설은 그 시절의 막바지에 만들어진 책 한 권을 모티브로 한다. 이른바 ‘사라예보의 하가다’다.

<하가다>는 유대인 가정에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 식사(세데르) 때 행하는 제례의식을 그림과 함께 담은 책이다. 유대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책이면서도, 여염집 가정에도 한 권씩은 있을 만큼 흔하단다. 소설 속 <하가다>에 등장하는 그림은 콘비벤시아가 막바지로 치닫던 1480년 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여성 노예가 세비야에서 그렸고, 유대인 추방령과 함께 공존의 시대가 막을 내린 1492년 타라고나의 유대인 남성이 글을 써 묶어냈다.

고서적 복원 전문가인 주인공 해나 히스가 <하가다>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해가는 과정은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책에 남겨진 미세한 흔적을 따라 나치가 발호하던 1940년의 사라예보를 시작으로, 퇴폐와 향략에 취해 있던 1894년의 빈과 종교재판의 광기가 번득이던 1609년의 베네치아까지 숨가쁘게 내달린다. 그 사이사이, 주인공의 시대가 격자로 끼어들며 시공을 확장한다. 시대를 거슬러 유대인의 책을 지켜낸 것은 가톨릭 주교와 무슬림 사서들이었으니, ‘사라예보의 하가다’는 잃어버린 ‘콘비벤시아’에 대한 그리움의 현현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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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끌리는 책 2009/12/22 14:35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덕형 지음, 산책자 펴냄, 2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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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의 도시.’ 1703년 표트르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정신적 삶의 위업’이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발트해 어귀의 황량한 늪지에 건설된 이곳은 ‘정교적 러시아의 영혼과 유럽의 모더니티가 착종된 이종접합’의 인공도시다. ‘나의 것’과 ‘남의 것’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낸 ‘이종교배’의 문화가 그 도시의 고갱이다. 이덕형 성균관대 교수(러시아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산책자 펴냄)에서 그 ‘환영의 도시’에서 살다 간 위대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던 모순과 역설, 이율배반과 정신착란, 환각과 환영의 판타스마고리아를 누구보다도 먼저 민감하게 느꼈던 사람이었다.”

유럽 열강으로 도약하려던 표트르 대제의 욕망은, 종교개혁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가톨릭 교회의 위상을 곧추세우기 위해 시작된 서구의 웅장한 바로크 문화로 이어졌다. 이를 단기간에 모방·이식하려는 시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낳았다. 지은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와 유럽, 가톨릭의 바로크와 정교의 슬라브주의 사이에서 태어난 몽환의 공간, 곧 판타스마고리아”라고 지적한다. ‘환영’(幻影)이란 뜻의 ‘판타스마’에서 유래한 ‘판타스마고리아’는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명된 환등기의 투사 이미지를 일컫는다.

“이 도시에 기하학이 등장했다!” 도시 건설 초기 러시아 정부의 회계 감사관이 도로를 측량하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합리적 이성의 은유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등장한 것은 결국 서구 라틴 가톨릭 문화권의 핵심 코드인 ‘합리성’과 ‘이성’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과 알렉산드리아로 대표되는 비잔티움 정교 문화권에선 합리성과 이성보다 이를 초월하는 ‘침묵’과 ‘관조’를 인식의 기초로 삼아왔다. 이런 이질적인 두 문화의 충돌이야말로 도시를 휘감은 모순과 부조리의 뿌리였다. 지은이는 이렇게 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합리적 이성이 도입되자 러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이 도시가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고, 타락한 로마 가톨릭 문화에서 건너온 유클리드 기하학은 적그리스도의 학문으로 비쳤을 것이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거의 적대적이라고 할 만큼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삶은, 세계는, 신은, 인간은 ‘2X2=4’라는 합리성의 도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2X2=4’라는 상징은 합리적 이성이자 자유가 박탈된 서구 가톨릭 세계의 그리스도교였다.”

그 판타스마고리아의 도시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무 번 이상 이사를 다녔다. 도박과 현시적 소비의 굴레를 벗어내지 못했던 그는 평생 한 번도 그 도시에서 정주처를 갖지 못했다. 지은이는 “마치 환영이나 그림자처럼 그는 ‘집’의 실체를 모르는 부초였고 그 자신이 이 도시의 판타스마고리아 자체였다”며 “도박에 몰입하다가 간질 발작을 일으키고 섬망 상태에서 소설을 쓰다가 어슴 새벽의 여명에 겨우 잠드는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더니티의 한 현상이었다”고 표현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대한 평론이자 전기이기도 한 이 책은 또한 현란한 지적 기행문이기도 하다. “산책자의 눈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구석방과 모퉁이 집들을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고 싶었다”는 지은이는 실제 상트페테르부르크란 ‘판타스마고리아’를 일평생 배회한 거장의 흔적을 발품 팔아 더듬었다. 1837년 5월 공병학교 입학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첫 밤을 보낸 ‘모스코프스키 대로 22번지 네아폴 호텔’에서 출발해, 최후의 걸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집필을 마친 뒤 탈진해 1881년 2월 숨을 거둔 ‘쿠즈네치니 골목 5번지’까지 땀으로 그 도시를 주유했다. 이만한 헌사도 드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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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미래

끌리는 책 2009/12/22 14:31
<진보의 미래>
노무현 지음, 동녘 펴냄,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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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자!’ 대한민국 대구시 달서구 월곡로 241에 자리한 영남고등학교의 교훈이란다. 부제가 있다. ‘올바르게, 부지런하게, 튼튼하게.’ 11월27일 저녁, 야당 정치인이던 시절부터 그와 인연을 맺어 참여정부 내내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그분의 인생관은 영남고등학교 교훈과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그가 또 책을 냈다. ‘자~알, 살자’가 주제다. <진보의 미래>(동녘 펴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시민을 위한 교양서’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다.

“내가 좀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습관이 조금은 있어요. 얘기할 때 그런 걸 좀 느낄 겁니다. 근데 처음에 소망, 행복, 성공 이런 얘길 좀 하고 싶거근요. …막상 ‘소망이란 게 뭔가?’ 생각을 해봤더니 지구의 극지를 탐험한다고 쫓아다니는 사람들, 가서 죽고 동료가 죽는 걸 보고도 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고,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고, …도대체 사람들의 소망이 뭔가? 생각을 해보니까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행복이란 개념을 끄집어냈어요. ‘행복이란 무엇인가’ 해보니까 사람의 소망이 다 이뤄지는 게 행복이라고 얘길 해야 되겠더라고.”

지난 9월 펴낸 <성공과 좌절>(학고재 펴냄·1만5천원)이 스스로 재임 기간을 되돌아보는 ‘회고록’이라면, <진보의 미래>는 퇴임 이후 그가 살아가고자 했던 ‘희망’이다. 315쪽에 이르는 잘 장정된 두 번째 책에서 그는 여전히 진지했고, 고민했고,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고 싶어했다. ‘국가란 무엇이냐’와 같은 도저한 질문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글을 썼다.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 말을 건네고, 토론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매일을 기다렸다. ‘담배 피우는 사람 오면 얻어 피우려고….’ 임기를 마친 뒤에도 그는, 특유의 결기를 놓지 않았다. 운명이다.

손자를 본 나이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물음은 자연스럽다. 그에 대한 답 또는 물 흐르듯 거침이 없다. 살아온 삶이 그랬다. 그는 “국가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의문이 생긴다. “국가란 무엇인가?” 질문이 성기다. 다시 그가 묻는다.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5년의 경험으로 그가 말한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다시 영남고등학교의 교훈이다.

정체가 뭐냐고? 그는 진보와 보수를 명명백백 가르기를 바랐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굳이 선택을 할까? 그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길항관계’라고?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희생되고, 자유를 강조하면 평등이 희생된다고? 그는 “누구의, 어떤 자유를 말하느냐에 따라서 얘기가 달라진다”고 믿었다.

“재산권을 중심으로 보고 평등을 강조하면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인데, 생존권이란 것을, 별 볼일 없는 부자 아닌 사람의 생존권을 중심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져요. 평등을 강조할수록 생존권 차원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가 신장되는 것이죠. …자유와 평등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 나는 그렇습니다. 불평등이 없으면 지배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자유니 속박이니 하는 개념이 싸움이 될 일도 없다는 것이죠.”

물러나서도, 그래서 아파했다. 아쉬움이 왜 없었을까? 올 3월24일, 그는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쪽에서는 ‘너 좌파지?’ 하고 한쪽에선 ‘너 신자유주의지?’ 이렇게 말한단 말이에요. 근데 이게 기준이 뭐냐 이겁니다. 뭐가 기준이에요? 그 기준에 관한 얘기, 결국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뭐냐’라는 얘기를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대답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두 번째 유고는 ‘교시’가 돼, 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남은 자들에게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 2권, 3권을 ‘교사’하고 있다.

눈 맑은 그 사내, 정 많아 여렸다. 툭하면 눈물 흘리고, 분연히 시대를 분노했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진보의 미래>를 읽다보면 어설픈 웃음 흘리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음미할 수 있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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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시대 르네상스

끌리는 책 2009/12/22 14:26
<인간시대 르네상스>
박홍규 지음, 필맥 펴냄,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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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지배, 최대 생산의 추구로 상징되는 자본주의가 부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르네상스로 돌아가야 한다. 천민자본주의와 획일적 대중문화에 젖어버린 우리에게는 르네상스 문화의 핵심인 자유로운 인간, 자치하는 사회, 자연에 대한 존중은 그만큼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도발적 문제의식으로 대안적 삶과 세계에 대한 사색의 결과물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가 서구 근대문명의 모태라 할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흔히 ‘문예부흥’으로 번역하지만, 박 교수는 “르네상스를 단순히 고대문명의 ‘부흥’으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간주의와 개혁성을 중심으로 르네상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는 우리가 사는 현대처럼 모든 인간이 아닌 일부 인간만이 주인인 비민주주의 시대였지만, 그 전인 중세에 인간이 아닌 신이 주인이라고 했던 것을 부정하고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휴머니즘)에 입각해 자유, 자치, 자연이 존중되는 사회를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명실공히 근대의 시작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20명의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박 교수는 그들의 인간관과 사회관 그리고 꿈을 ‘자유·자치·자연’이란 세 가지 개념으로 정리해냈다. 이를 ‘3자주의’라고 표현했는데, 이 세 가지 가치가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개인의 삶은 신이나 집단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어야 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언제나 타인과 함께 자치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며 “3자주의를 최소한의 내용으로 갖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허울만의 민주주의에 불과하며,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렇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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